잦은 이사와 수 회에 걸친 지뚫하킥 감상으로 인해 심과 신이 모두 지쳐버리는 2009년 연말을 맞았다. 최근의 나답지 않게 저녁 여덟시부터 잠이 들었고 칼바람이 몰아치는 광장에서 새해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기 약 15분 10초 전에 기상하였다. 나는 멍한 정신으로, 새해를 맞아 치맥을 즐기려는 사람들과 합류하려고 하는데 밖으로 가는 길에 담배가 없다. 무심히 치킨과 맥주를 먹다보니 새해가 오긴 왔나보다. TV를 보니 새해 벽두부터 웬갖 연예인들이 춤바람이 났다. 내 노래가 니 노래고 내 춤이 니 춤이고 이놈이랑 엮어주고 저놈이랑 엮어주고 정신이 없다. 기껏해야 중, 고등학생들이 나와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어대는 모습을 보면서 좋아하기도 잠시뿐, 이젠 아무 생각이 없다.
배부르게 치킨을 먹고 끄윽, 하면서 담배를 빼 문다. 만물의 영장 인간답게 배가 부르니 잡생각들이 슬슬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크리스마스 전후로 서울에 갔을 때 많이 느낀 거지만 올해도 정말 이상한 한 해였다고 생각한다.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내가 가진 것들은 자취를 감추며 감성은 메말라 가는 것 같다.
2009년 초반은 사실 아무 생각이 ㅇ벗는 상태였다고 본다. 내가 이 시기에 뭔가 진지한 고민을 바탕으로 생활하고자 하는 의욕이 있었으면 봄학기에 그렇게 막장으로 살지 않았겠지. 돌이켜봐도 봄학기때 받은 성적은 기적의 숫자다.
한편 봄학기때는 상준이형과 승훈이형과 윤종훈놈이 있었기 때문에 밴드는 재밌게 했다. 하지만 좀 더 많은 생각을 하고 부지런했으면 2008년 겨울부터 해 오던 일들을 좀 더 빛낼수 있었더라고 후회해 본다. 솔직히 이것이 밴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정말 평생 잊지못할 멤버며 음악들이며 공연들이 가슴에 남는다.
봄학기 끝나고부터 정말 생활이 꼬이기 시작한 것 같다. 2008년까지 살아왔듯 아무 생각없이 잉여대는 그저 똥싸는 기계였을 뿐인 생활을 했다면 모르겠지만, 나이를 제대로 먹긴 먹는 듯 많은 문제와 그에 대한 고민이 무럭무럭 자라난다. 그래서일까, 하던 작업들은 점점 순수성을 잃고 매너리즘에 빠진다. 마찰은 일어나고 간극은 벌어져만 가는데, 이루고 싶은 건 많다. 그래, 여전히 어리다.
국토는 재밌게 갔다 왔다. 몸 고생의 궁극을 느끼나 했지만 이내 적응되는 자신을 보면서 희미한 자괴감이 들었다. 이 짓을 며칠 했다고 벌써 게을러지나? 최근에 갖고 있던 육체노동에 대한 환상이 좀 깨지긴 했다. 물론 한번쯤은 힘들어봐야 한다.
가을학기는 정말 폭풍이었다. 과외도 안하고 밴드도 안하고 한번 공부해보자 달려들었으나 결과는 보기좋게 참패. 이쯤 되니 근본적인 회의가 들기 시작한다. 정말 내가 뭘 하고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은 아무리 생각해도 쉬지않는 떡밥이지만 언제까지고 이 떡밥을 잘근잘근 씹고 있을 수는 없겠지.
2010년 4월 19일까지 남은 시간은 별로 없다. 하고 싶은 것은 여전히 많고, 고민거리도 여전히 많다. 그 중에 뭐 하나라도 잘 하고 가는게 있을까? 아니면 뭐 하나라도 이루고 가겠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인가?
국방의 의무를 빙자한 징역 2년+현실도피를 앞두고, 절실하게 바라는 것은 저 획일화된 집단에서 2년을 썩기 전에 다만 내 자신이 누군지 알고 싶다, 그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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